수납은 정리를 잘하게 만드는 공사가 아닙니다
"수납장은 정리를 잘하게 만드는 공사가 아닙니다. 정리를 안 해도 되게 만드는 공사에 가깝습니다."

상담하다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리를 좀 못해요. 저희가 좀 게을러서요."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건이 돌아갈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누구든 다시 어질러집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어질러지는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죠.
구축에서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대부분 성향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20~30년 전 도면은 지금보다 짐이 훨씬 적은 생활을 기준으로 그려졌습니다. 건조기도, 로봇청소기도, 아이 짐도 그때 계산에 없었습니다. 예전 도면 세탁실에는 세탁기 한 대 자리만 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건조기까지 올려야 합니다. 그러니 갈 곳 없는 물건이 생기고, 그게 베란다와 거실로 나옵니다.

자리를 정해두면 물건은 거기로 돌아가고, 문을 닫으면 안 보입니다. 취향 문제가 아니라 매일 눈에 들어오는 정보량의 문제죠.
여기서 돌아오는 것도 결국 시간과 기분입니다. 치우는 시간, 물건 찾는 시간, 그리고 어질러진 집을 보면서 서로 한마디씩 하게 되는 상황이 줄어듭니다. 이건 준공 사진에는 안 나오고 반년 뒤에 나타납니다.

단점 인정하겠습니다. 수납을 많이 짜면 그만큼 공간이 좁아 보일수도 있죠. 또한 예산도 생각보다 올라갈 테고요. 그리고 짐이 정말 적은 집이라면 이 투자는 회수가 안 됩니다. 이런 집에는 저도 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납은 굳이 인테리어 업체를 통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구업체에서 따로 하시는 게 더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그때도 철거와 전기 위치가 정해지기 전에 도면을 같이 보셔야 합니다.
제 집이면요, 저는 수납을 예산의 마지막 옵션이 아니라 초반 항목으로 놓습니다. 짐이 갈 데가 없으면 나머지 공사가 아무리 잘 나와도 반년 뒤에 안 보이거든요.
"우리가 정리를 못 해서"라는 진단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사람 문제가 아니라 자리 문제입니다.
IN인체인지 이대표였습니다.